작은대학교

기독교학과 브리핑

아나테마 — 저주인가, 따로 떼어둔 것인가

혐오와 파문, 그리고 희생물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낱말

한마디로 말하면

아나테마는 혐오하거나 피하고 싶은 것을 뜻하기도 하고, 교회의 준엄한 단죄가 따르는 영구파문을 뜻하기도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이 낱말은 일상의 말과 신앙의 말 사이를 오갑니다. 어떤 것을 혐오하거나 회피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이 말을 씁니다. 그런데 기독교 안에서는 같은 말이 훨씬 무거운 자리에 놓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이해하려면 두 쓰임이 어떻게 갈라졌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아나테마는 크게 세 갈래로 쓰입니다. 첫째, 아주 일상적인 쓰임입니다. 어떤 것을 혐오하거나 회피하고 싶을 때 그 대상을 이 말로 부릅니다. 둘째, 신약성경의 쓰임입니다. 여기서 아나테마는 영구파문을 뜻합니다. 영구파문은 교회가 엄격하게 단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셋째, 구약성경의 쓰임입니다. 여기서는 희생물을 위해 따로 떼어둔 것을 가리킵니다. 창조물이나 물건이 그렇게 따로 떼어졌습니다. 따로 떼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일상적인 쓰임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리고 파괴되는 대신 운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세 갈래를 나란히 놓고 보면, 아나테마는 단순히 미워서 밀어내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 존재로 여겨질 때도 있었던 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이해해 왔을까

오늘 이 말을 읽는 사람에게 아나테마는 두 얼굴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사람을 밀어내는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를 특별히 구별해 세우는 얼굴입니다. 같은 말이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무게를 갖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쓸 때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 누군가를 밀어내는 것인지, 무엇인가를 따로 세우는 것인지 — 한 번쯤 물어 보게 됩니다.

자주 생기는 오해

아나테마를 그저 '저주'나 '욕설'로만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희생물을 위해 따로 떼어둔 것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미움의 말만은 아니었습니다.

교수의 한마디

한 낱말이 시대와 자리를 옮기며 얼마나 다른 얼굴이 되는지, 아나테마는 잘 보여 줍니다. 낱말을 들으면 먼저 '이 말이 어디서 왔을까'를 물어 보면 좋겠습니다.

한 줄 정리

아나테마는 혐오의 말이면서, 동시에 따로 떼어 바쳐진 것과 교회의 영구파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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