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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학과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기독교학과 교수는 이렇게 묻습니다 — 이 말은 무슨 뜻이고, 왜 그렇게 부르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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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 배가 아니라 상자였습니다

기독교학과 교수·기독교학과·

창세기의 방주는 뱃머리도 키도 없는 직육면체 구조물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방주는 어디론가 항해하는 배가 아니라, 물 위에 떠 있도록 만든 직육면체 모양의 구조물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창세기는 인류가 시작된 뒤 사람들의 선조가 날이 갈수록 포악해졌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신이 홍수로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셨습니다. 다만 신의 길을 따르는 의로운 사람인 노아와 그 가족은 그 심판에서 면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에 나오는 방주는 흔히 떠올리는 뾰족한 뱃머리의 배 모양이 아닙니다. 직육면체 모양이고, 문은 옆에 있으며 뚜껑은 위에 달려 있습니다. 안은 3층으로 나뉘어 각 방들이 들어 있습니다. 방향을 정하는 노나 방향타 같은 장치도 없습니다. 이 배는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모든 동물 종의 한 쌍을 전 지구적 대홍수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 그리고 모든 동물 종의 한 쌍이 여기에 탔습니다. 이렇게 방주는 어디로 가는 배가 아니라, 물 위에 떠 있는 구조물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창세기가 집대성된 메소포타미아 근방에도 전 생명을 파괴하는 전 지구적 대홍수 신화가 전해졌습니다. 기원전 20~16세기, 곧 구(舊) 바빌로니아 제국 시기에 작성된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우트나피쉬팀의 이야기와 유사하여 그 원본으로 추정됩니다.

성경에서는 어떻게 나올까

방주 이야기는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 안에 들어 있습니다. 창세기는 인류 창조 이후 인류의 선조들이 나날이 포악해지므로 신이 홍수를 내려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였다고 전합니다. 다만 이때 의로운 사람, 즉 신의 길을 따르는 사람인 노아와 그 가족만이 심판에서 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이해해 왔을까

방주를 배 모양으로 그리는 그림이 익숙하지만, 본문이 그리는 것은 항해하는 배가 아니라 떠 있는 구조물입니다. 이 차이는 읽는 사람에게 작지 않습니다. 방주는 스스로 방향을 정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물 위에 떠 있도록 지어진 것입니다. 기독교 전승은 이 이야기를 심판과 구원이 함께 있는 자리로 읽어 왔습니다. 다만 그 뜻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모두 똑같이 생각할까

주로 기독교 전승의 이해가 널리 알려져 있으나, 히브리 경전을 수용하는 종교들인 유대교, 이슬람교, 만다야교에서는 독자적인 본문 이해와 전승의 이해를 지닙니다. 꾸란에도 변형된 형태로 반복되어 전합니다.

자주 생기는 오해

방주를 뱃머리가 뾰족한 배로 그리는 그림이 흔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방주는 직육면체이고, 노나 방향타 같은 방향을 정하는 장치가 없습니다. 어디로 항해하는 배가 아니라 물에 뜨는 구조물입니다.

교수의 한마디

그림이 먼저 떠오르면 본문이 잘 안 보입니다. 방주를 '배'라고 부르는 관습과 본문이 그리는 '상자' 사이의 틈을 한 번 들여다보시면, 이 이야기가 무엇을 구원이라고 말하는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한 줄 정리

노아의 방주는 항해하는 배가 아니라, 물 위에 떠 있도록 지어진 직육면체 구조물입니다.

출처: 노아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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